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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김대중 육성 회고록

김대중 육성 회고록 (8/12)

by 나만의방식 2025. 7. 9.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기획 - 한길사

  8.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과 새로운 도약

 

(p. 561)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내가 대통령이 된 것은 이때 나의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마음먹었어요.)

Q) 어떤 전략을 세우셨습니까?

A) 우선 달러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당장의 부도를 막을 수 있었어요. 그다음은 단기 외채 상환 기한을 연기해야 했어요. 달러를 확보해도 단기 외채 상환 기한을 연장하지 않으면 그 돈은 고스란히 외국 금융기관으로 가게 됩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성공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p. 563)

Q) 노사정 대타협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A) 그렇지요. 그때 제일 어려운 일은 민주노총과의 합의였습니다. 민주노총은 노사정 위원회 참여를 마치 정부와 기업에 이용당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참여하는 것을 꺼렸고 참여 후에도 상당히 까다로운 태도를 보였습니다. 물론 정리해고제 등 노동유연성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노동계가 경계하고 반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때 합의가 안 되면 우리는 다시 국가부도 위기 상황으로 몰릴 처지였어요. 나는 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설득했습니다. 나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처럼 협박하고 압박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해서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노동계를 무력화시켜서 억지로 합의를 이끌어낸다 해도 그것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해서 문제가 다시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합니다. 나는 나의 리더십을 발휘해서 우리가 처한 국내적 여건을 최대한 설명하고 설득하고 노동계의 오랜 숙원을 받아들이는 포괄적인 협상을 추진해서 결국 타협에 성공했어요.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보람 있고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p. 578)

Q) 큰 성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업들이 헐값으로 팔렸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특정 사례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필요하고 그에 따른 평가가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연히 '헐값'이라는 표현으로 낙인찍은 찍는 것은 경제적인 평가라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이기적인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결국 외국자본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연결되는 사안입니다. 우리는 과거 일본으로부터 식민통치를 당한 아픈 역사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여 외세를 부정적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좌우 가릴 것 없이 나타나는 반일민족주의가 그렇고 1980년대 학생운동 세력에게서 나타난 반미 민족주의도 그런 경우입니다. 우리가 IMF 관리체제로 들어간 이때도 경제식민지라는 표현을 통해서 외국자본에 대해 부정적으로 접근하는 흐름이 좌우 양쪽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태도는 옳지 못하다고 봤습니다 당시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외국인 투자자,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어요. WTO 체제하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의 국적보다는 그 자본이 어디에 투자되는지에 있는 것입니다. 그때도 강조했고 지금도 외국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면 우리 기업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은 과거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경제의 세계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입니다.

 

 

 

(p. 600)

Q)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함께 대통령님의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의료보험 통합이었습니다. 어떤 배경에서 추진하셨습니까?

A)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함께 의료보험을 통합해서 국민건강보험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서 나는 지금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복지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나눔과 연대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기존의 조합주의 방식의 의료보험은 사회적 나눔과 연대가 아니라 차이와 차별을 제도화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복지의 기본 정신과 맞지 않았어요. 부자 조합과 가난한 조합 사이의 격차가 심해서 어떤 조합에 가입했느냐에 따라서 의료보험 서비스의 대상과 보장 정도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둔 채 복지사회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료보험 통합을 강력하게 밀고 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