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기획 - 한길사
- 나의 고향 하의도와 목포
(p.67)
Q) 대통령님께서는 해방공간에서 김구 선생의 정치적 활동 및 노선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A) 김구 선생은 위대한 애국자였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중략)
만일 김구 선생이 총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자신도 대통령이 되고자 했다면 이승만 박사가 안 되었을 거예요. 그러면 이승만 독재정권이 나오지도 못했겠지요. 이승만 정권은 반공을 빙자해서 무자비한 독재를 했어요.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거창 사건도 있었고 국민방위군 사건도 있었어요. 그런데 김구 선생은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분은 위대한 애국자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정치인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심지어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정치인은 현실을 도외시하면 안 됩니다. 내가 항상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함께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정치적 실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원칙과 현실은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으로서 김구 선생은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정치인 뿐만이 아니라 이상과 현실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닐까?
(p. 80)
Q) 20대 청년 시절을 회고하시면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나 특별히 남기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생각해보면 상업학교를 졸업해서 전남기선에 취직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인생을 아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해요. 한눈팔지 않고 무엇이든 깊이 생각하고 대도(大道)를 지키면서 살아왔어요. 그리고 내가 아주 지혜롭게 대처했기 때문에 지금 살아 있을 수 있는 거예요. 해방공간 때는 자칫 잘못하면 이쪽과 저쪽에서 모두 위험한 일을 당할 수 있었지요,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6.25 전쟁 때 서울에서 목포까지 걸어서 내려간 것도 극적인 일이었고요. 하여간 나중에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나를 소재로 해서 영화를 만들려고 하면 몇 편 나올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일관된 원칙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내게 그런 생각을 심어준 분은 3학년 때 담임이었던 노구치 진로쿠라는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분은 항상 '원칙과 현실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 주장을 설득력있게 얘기해주셨어요. 그래서 이 선생님의 가르침이 내 머릿속에 아주 깊이 자리 잡게 되었지요, 요새 그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이런 생각으로 젊었을 때부터 지금 80대까지 열심히 살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 선생님의 가르침을 삶의 지침으로 그 시대에 어떻게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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